인터넷 뉴스에서 읽다가 괜찮다 싶어서 펐어.
읍참마속은.. 나에겐 더는 필요없을지도 몰라. 난 심하게 읍참마속하거든.
순망치한은.. 학연 지연의 중요함인가.
형설지공과 무한추구가 나에게 가장 필요한 듯하다.
범인(凡人)들이 가히 상상할 수 없는 큰 인물이 되야 하니깐..
나름대로 마음 속에 새겨야지.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관계를 중시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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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 : 잃을 망
齒 : 이 치
寒 : 찰 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 5년조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시대 말엽(B.C. 655), 진(晉)나라 헌공은 괵나라를 공격할 야심을 품고 통과국인 우나라 우공에게 그곳을 지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나라의 현인 궁지기(宮之寄)는 헌공의 속셈을 알고 우왕에게 간언했다.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몸이나 다름없는 사이오라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이옵니다. 옛 속담에도 수레의 짐받이 판자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고(輔車相依),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고 했습니다. 이는 바로 괵나라와 우나라의 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결코 길을 빌려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왕은 “진과 우리는 동종(同宗)의 나라인데 어찌 우리를 해칠 리가 있겠소?”라며 듣지 않았다. 궁지기는 후환이 두려워 “우리나라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족과 함께 우나라를 떠났다. 진나라는 궁지기의 예견대로 12월에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정복하고 우왕을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결코 끊어서는 안 되는 관계를 가리킨다. 동의어로 순치지국(脣齒之國)·순치보거(脣齒輔車)가 있으며, 유사어로 조지양익(鳥之兩翼)·거지양륜(車之兩輪)이 있다.
‘형설지공(螢雪之功)’
독하게 공부하며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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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 : 눈 설
之 : 갈 지
功 : 공 공
후진(後晉)의 이한(李瀚)이 지은 《몽구(蒙求)》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손강(孫康)은 집이 가난하여 기름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늘 눈빛에 책을 비추어 글을 읽었다. 나중에 그는 어사대부(御史大夫)에까지 벼슬이 올랐다.
또 진(晉)나라의 차윤(車胤)이란 사람은 기름을 구할 수가 없어 여름이면 수십 마리의 반딧불을 주머니에 담아 그 빛으로 밤을 새우며 책을 읽어 마침내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었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비롯되어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하는 것을 '형설지공' 또는 단순히 '형설'이라고 한다. 또 공부하는 서재를 형창설안(螢窓雪案)이라고도 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
한 번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새롭게 도전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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薪 : 섶나무 신
嘗 : 맛볼 상
膽 : 쓸개 담
섶에 누워 자고 쓰디쓴 곰쓸개를 핥으며 패전의 굴욕을 되새겼다는 뜻이다.
BC 496년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월(越)나라로 쳐들어갔다가 월왕 구천(句踐)에게 패하여 전사하였다. 그 아들 부차(夫差)는 이 원수를 갚고자 본국으로 돌아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방 앞에 사람을 세워 두고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하고 외치게 하였다. 부차의 이와 같은 소식을 들은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먼저 쳐들어갔으나 패하고 말았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말이다.
한편, 싸움에 크게 패한 구천은 얼마 남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회계산(會稽山)에서 농성을 하였으나 견디지 못하고 오나라에 항복하였다. 포로가 된 구천 내외와 신하 범려(范蠡)는 갖은 고역과 모욕을 겪은 끝에 영원히 오나라의 속국이 될 것을 맹세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그는 돌아오자 자리 옆에 항상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늘 이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씹으며 “너는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잊었느냐!”하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이 상담(嘗膽)에 대한 이야기는 《사기(史記)》 월세가(越世家)에도 나온다.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쳐서 이기고 오왕 부차로 하여금 자살하게 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후의 일이다. 이와 같이 와신상담은 부차의 와신과 구천의 상담이 합쳐서 된 말로 ‘회계지치’라고도 한다.
훌륭한 인재와 파트너를 등용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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顧 : 돌아볼 고
之 : 어조사 지
禮 : 예도 례
《삼국지(三國志)》의 〈촉지 제갈량전(蜀志 諸葛亮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기 관우(關羽:?~219)와 장비(張飛: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무너져 가는 한(漢)나라의 부흥을 위해 애를 쓴 유비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허송 세월만 보낸 채 탄식하였다. 유비는 유표(劉彪)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관우와 장비와 같은 강한 군사력이 있으면서도 조조(曹操)에게 여러 차례 당하였다. 유비는 그 이유를 유효 적절한 전술을 발휘할 지혜로운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유능한 참모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유비는 채모(유표의 부하)의 계략을 피하려다 길을 잃고, 우연히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를 만나게 된다. 사마휘에게 유능한 책사를 천거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마휘는 "복룡(伏龍)과 봉추(鳳雛) 가운데 한 사람만 선택하시지요"라고 말하였다. 유비는 복룡이 제갈 량임을 알고 그를 맞으러 장비와 관우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그의 초가집으로 갔는데, 세 번째 갔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제갈 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삼고지례는 유비가 제갈 량을 얻기 위해 그의 누추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간 데서 유래하는데,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발휘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또한 인재를 알아 볼 줄 아는 안목도 또한 갖추어야 한다.
유비는 제갈 량을 얻은 이후 자신과 제갈 량의 사이를 수어지교(水魚之交:물고기가 물을 만난 사이)라고 말하였다. 제갈 량은 원래 미천한 신분으로 이곳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면서 숨어 지냈다. 그는 스스로를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에 비유하였지만 최주평(崔州平)과 서서(徐庶)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다. 그는 뜻을 펼칠 때를 기다린 것이었다.
제갈 량은 이후 《출사표(出師表)》에서 자기를 찾은 유비의 지극한 정성에 대해 감격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신이 비천한 신분임을 알면서도 싫어하지 않고 외람되게도 몸을 낮추어 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 주어 당시의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이 일로 저는 감격하여 선제께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줄여서 삼고라고 하며, 삼고초려(三顧草廬) 또는 초려삼고(草廬三顧)라고도 한다. 비슷한 말로 삼고지우(三顧知遇)
가 있다.
높은 완성도를 위해 완벽함을 지향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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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는 격(格)을 이른다[至]는 뜻으로 해석하여 모든 사물의 이치(理致)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致知]고 하는, 이른바 성즉리설(性卽理說)을 확립하였고, 왕양명은 사람의 참다운 양지(良知)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物欲)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격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풀이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을 확립하였다.
즉,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고 있어 오늘날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
머뭇거리지 않고 과감히 결단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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斬 : 벨 참
馬 : 말 마
謖 : 일어날 속
울며 마속(馬謖)의 목을 벤다는 뜻으로 《촉지(蜀誌)》 〈마속전(馬謖傳)〉에 나오는 말이다. 촉(蜀)나라의 제갈 량(諸葛亮)은 가정(街亭)의 싸움에서 자기의 명령·지시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싸우다가 패한 부장(部將) 마속을, 그 전날의 공과 두터운 친분에도 불구하고 울며 목을 베어 전군의 본보기로 삼았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한 후 앞으로 나아가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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磋 : 갈 차
琢 : 쫄 탁
磨 : 갈 마
원래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며 숫돌에 간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수양뿐만 아니라 기술을 익히고 사업을 이룩하는 데도 인용된다. 《대학》에 보면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자르듯하고 쓸 듯함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요, 쪼듯하고 갈 듯함은 스스로 닦는 일이다)"라고 하여 절차는 학문을 뜻하고, 탁마는 수양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여절여차여탁여마"에서 여(如)자를 뺀 것이 절차탁마이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내려고 노력하는 습관
‘선즉제인(先卽制人)’
남보다 한 발 빠른 것을 추구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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則 : 곧 즉
制 : 억제할 제
人 : 사람 인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말이다. 진(秦)나라의 2세 황제가 즉위하던 그 해에 일어난 일이다.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시황제 이래 계속되는 폭정에 저항하여 농민군을 이끌고 대택향(大澤鄕:지금의 안후이성 기현)에서 봉기하였다[진승·오광의 난]. 진승과 오광은 단숨에 기현을 함락하고 진(陳:지금의 허난성 회양)에 입성하였다. 이후 귀족들과 반진(反秦) 세력과 연합하여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으로 진격하였다. 이때 회계(會稽)의 태수(太守) 은통(殷通)도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오중(吳中:지금의 장쑤성 오현)의 실력자인 항량(項梁)과 거사를 의논하였다. 항량은 초(楚)나라의 명장 항연(項燕)의 아들로 병법에 뛰어났으며, 고향에서 살인한 이후 조카인 항우(項羽)와 함께 오중으로 도망친 뒤 타고난 지도력을 발휘하여 실력자가 되었다.
은통은 항량에게 “강서(안후이성, 허난성)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때가 온 것입니다. 내가 듣건대 먼저 선수를 치면 상대를 제압할 수 있고, 뒤지면 제압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대와 환초를 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일으킬까 합니다[江西皆反 此亦天亡秦時也. 吾聞 先則制人 後則爲人所制. 吾欲發兵 使公及桓楚將].” 이에 대해 항량은 “군사를 일으키려면 우선 환초부터 찾아야 하는데, 환초의 거처를 알고 있는 자는 제 조카 항우뿐입니다. 이 기회에 제 조카를 만나 환초를 찾아오게 하는 것이 어떨는지요”라고 하였다.
은통이 동의하여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항우를 들어오게 하였다. 들어온 항우에게 항량은 눈짓으로 은통을 단칼에 죽이라고 하였다. 결국 의논하러 간 은통은 항량에게 선수를 빼앗겨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이후 항량은 스스로 회계의 태수가 되어 은통이 거느리던 군사 8천 명을 이끌고 함양으로 진격하던 중 죽었다. 선즉제인은 상대편이 준비하기 이전에 선수를 쳐 대세를 장악한다는 뜻이며, 비슷한말은 진승오광(陳勝吳廣:어떤 일에 선수를 쓰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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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거 트랙백같은거 하면 살인충동 느낄지도 모르겠다